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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주고 약 주는…뗄 수 없는 삶의 동반자

2015-10-14 20:01:04
조회 965
세포보다 10배 많고 무게는 1kg
몸 대사·면역 책임지는 ‘제2 장기’
질병은 몸과 미생물 균형 깨진 것


대변 속 미생물은 장염 치료 특효
여러 암, 비만, 정신질환에도 관여
발효식품은 이로운 미생물 천국
‘미생물유전체 프로젝트’ 기대 커

우리 몸에는 몸의 세포 수보다 열 배나 많은 미생물이 수백, 수천 종 살고 있다. 메드아트(medart.co.kr) 자료제공


 


소우주 같은 ‘몸속 미생물’ 세상

 
지금은 훤칠한 우리 아들 유진이가 어렸을 적엔 꽤 통통한 편이어서 내가 가끔 “어이, 호빵맨~” 하고 짓궂게 놀릴 때면, 아들은 미생물 연구자인 내게 “아빠는 세균맨이야!” 하며 반격하곤 했다.


우리는 세균 또는 박테리아 하면 병원균의 나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세균, 고균, 원생생물, 곰팡이처럼 우리 몸과 지구의 여러 환경에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수많은 미생물은 건강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고 이 가운데 우리에게 해로운 미생물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노벨상 수상자 조슈아 레더버그는 2000년에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기고한 글에서 ‘인간은 선이고, 미생물은 악’이라는 편견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그는 인체의 특정 서식처에 사는 미생물들과 그 유전체 전체를 통틀어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미생물체)이라고 부르며 기주(숙주)와 미생물을 합쳐 ‘슈퍼유기체’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최근 생명과학 연구를 통해 점차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인체 속의 미생물 ‘소우주’


우리 몸에는 수백, 수천 종의 미생물이 몸을 이루는 세포 수보다 열 배나 많게 터 잡아 살며, 무게로 1㎏ 남짓이나 된다. 인간 유전체의 수백 배에 이르는 유전정보를 지닌 우리 몸속의 미생물 세상은 그야말로 ‘소우주’라 할 수 있다.


거의 무균 상태로 태어나는 인체에 공생하는 미생물은 삶의 동반자이다. 유전적 요인과 함께 생리와 건강에 영향을 주는 환경적 요인의 대부분은 인간과 함께 진화해온 미생물에 의한 것이다. 피부, 눈, 입, 소화기, 호흡기, 비뇨생식기 등에 사는 미생물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데, 특히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은 ‘사실상의 장기’라 불릴 만큼 소화뿐 아니라 몸의 대사와 면역 시스템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미생물은 건강뿐 아니라 행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따르면, 초파리는 같은 종류의 미생물이 든 먹이를 먹은 초파리와 교미하기를 선호해 종 분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프로바이오틱 세균을 섭취한 생쥐는 두려움을 느끼는 정도가 낮은데 장내 미생물 정보가 부교감신경 중 가장 큰 미주신경을 통해 뇌에 전해져 심리 상태가 바뀐 탓이라고 한다.


평시에는 내 삶의 반려자이자 협력자이다가 내가 약해지면 나를 공격하기도 하는 것이 내 몸의 미생물이다. 우리 몸과 미생물 간의 미묘한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미생물이 일으키는 흔한 질병으로는 당장에 충치, 풍치, 여드름, 종기, 패혈증 등을 떠올릴 수 있고, 배리 마셜 박사가 헬리코박터균을 스스로 마셔 이 균이 위염을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한 유명한 일화도 떠오른다.
 


대변요법, 똥을 약으로 쓴다?


반면에 장내 미생물은 질병 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 몸의 여러 안식처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세력 균형을 이루며 조화롭게 살아가지만 가끔 그 질서가 흐트러질 때도 있다. 예컨대 감기에 걸리거나 피부에 종기가 나서 항생제를 복용하면 장내에 사는 많은 미생물도 대량학살을 당하고 그들 간의 균형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때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 같은 특정 세균이 자칫 장내 미생물 세계를 군림할 정도로 과다 증식하면 환자는 심한 장염을 앓게 되는데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북미와 유럽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우에 환자의 장에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 ‘추출물’을 넣어주면 항생제를 투여할 때보다 치료 효과가 훨씬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도 잘 듣지 않는 속수무책에 대변 미생물은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똥은 병을 치유하는 약물일까, 몸이 배출한 장 점막세포 등 조직의 일부일까? 때마침 흥미로운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지난해 ‘사람 대변을 약물로 간주해 규제하겠다’고 밝혀 주목과 논란의 대상이 됐는데, 곧 입장을 바꿔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즉 ‘대변 미생물 이식’을 통해 미생물로 다른 질환도 치료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품질과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는 혼합물을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데 대한 우려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대 과학·의학은 염증성 장질환, 당뇨, 류머티스 관절염, 아토피, 천식 같은 면역질환뿐 아니라 여러 암과 비만, 그리고 자폐증,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서도 미생물을 공범으로 지목하기 시작했으니, 여러 미생물 요법이 의료에 널리 쓰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부분과 전체: 나무와 숲을 함께 보기


인간처럼 동물의 몸도 수많은 미생물의 보금자리이다. 소 같은 초식동물은 식물 섬유소를 분해하는 효소를 만드는 미생물 덕분에 풀만 뜯어 먹고도 살 수 있다. 한편에선 미생물이 먹이를 분해하면 온실가스인 메탄이 만들어져 방귀나 트림으로 배출되는데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로 인해 양서류를 위협하는 항아리곰팡이병이 창궐해 지구촌의 개구리가 멸종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돌이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다.


식물도 뿌리, 잎 또는 체내에서 여러 미생물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식물을 괴롭히는 병원성 곰팡이와 난균이 있는가 하면, 식물 생장촉진 세균은 공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고정하고, 인 같은 미네랄을 식물이 이용할 수 있게 하며, 식물 호르몬을 생산하고, 길항물질을 만들어 병원균 생육을 억제하며, 병해충 면역력이 증대되도록 돕는다.


또다른 곳의 미생물은 어떤가? 우리가 즐겨먹는 김치와 된장, 청국장 같은 발효식품에는 유산균을 비롯해 이로운 미생물이 많다. 그동안 여러 연구를 통해 김치가 익는 과정에 어떤 미생물이 관여하고 어떤 유전자와 발효산물에 의해 김치의 맛이 결정되며 우리 몸에는 어떻게 좋은지에 관한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토양과 개펄은 가장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어우러진 생명자원의 보고이다. 한 줌 흙에는 수만 종 미생물이 수백억 마리나 살고 있어 바이오산업에 쓰일 만한 유전자원이 무진장 숨어 있다.


몇 년 전부터 미생물 연구 분야에서는 ‘제2의 인간 유전체’로 불리는 우리 몸의 마이크로바이옴 전체를 분석하는 ‘인체 미생물체 프로젝트’(HMP) 등이 수행되었고, 다양한 환경과 생태계에서 새로운 미생물을 찾아내려는 연구도 여럿 이뤄져 왔다. 이런 연구는 갈수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유전체 염기서열 해독·분석 기술, 그리고 여기에서 생산되는 빅데이터를 다루는 생물정보학과 시스템생물학 등과 더불어 급속히 전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프론티어 미생물 유전체 활용기술 개발사업’에 이어 ‘포스트 게놈 다부처 유전체 사업’의 일환으로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미생물 유전체 프로젝트가 출범할 예정이고 미래창조과학부 등 부처 공동의 연구사업으로 기주-미생물 상호작용 연구 프로젝트가 추진될 예정이다. 이런 연구들에서 어떤 놀라운 발견과 발명이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지현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교수
 
출처: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6278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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